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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5.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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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영 한동대 교수 전 국립외교원장.jpg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5월10일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여러 분야에서 평가가 나오지만, 외교는 더 많은 평가와 논란이 집중되는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1년 동안 미국과 일본 두 나라와의 외교 외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취임 후 불과 11일만에 바이든의 방한으로 시작해서 지난 4월 말 미국 국빈 방문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의 세계는 지난 30년간 이어졌던 탈냉전과 세계화의 통합성이 무너지고, 미·중 전략경쟁과 파편화로 지정학 리스크가 커지면서 갈등과 혼란의 질서가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은 날로 군비경쟁이 심화하고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향하면서 무력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안정적 현상 관리는 뒷전이었고 '힘을 통한 평화'를 앞세우고 선제타격론과 전쟁불사론으로 기름을 얹었다. 국정 운영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임 정부 뒤집기 ABM(Anything but Moon)'이 외교·안보 분야에도 작동한다.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고 전략적 명확성을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전임 정부를 친중·친북·반미·반일 프레임으로 공격함으로써 친미·친일·반중·반북 노선임을 확실히 했다.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비핵화 노력의 실질적 포기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고조해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화의 빌미를 제공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

 

2022년 11월 동남아 순방 중 발표한 '한국판 인·태 전략'과 한·미·일의 '프놈펜 공동선언'은 이러한 진영편향 외교를 공식화한 것이다. 인·태 전략은 아베 전 수상이 창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전략으로 채택했으며, 바이든이 이어받은 미국의 전략이다. 말로만 한국판이지 사실상 미국의 핵심 개념과 내용을 그대로 차용한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인·태 전략과 일대일로에 중첩적으로 관여하는 동시에 양쪽을 연계함으로써 미·중 갈등의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편을 정하고 미국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한다. 더욱이 한·미·일의 군사협력을 확대하면서 북·중·러의 대륙 세력을 견제하고 적대시하는 해양 세력에 올라탄 것이다.

 

지난 3월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 동원 해법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한국 정부가 앞장서 합리화한 외교 참사인 것은 물론이고, 한·미·일 동맹 구축의 장애물을 미국의 전략을 위해 우리가 제거해 준 것이다. 해법 발표 직후 거의 실시간으로 미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이게 바로 내가 다른 국무부 고위 동료들과 함께 이 중차대한 협력관계에 그 많은 시간을 들이고 집중한 까닭"이라고 환영함으로써 스스로 배후임을 자처했다. 윤 정부는 국내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미래를 위한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양국 관계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줘 버렸다. 강제 동원 이슈에 관한 일본의 선의는커녕 독도, 위안부, 후쿠시마 오염수, 초계기 등의 이슈에서 기시다 정부는 윤석열 정부를 더욱 압박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국민의 반감과 저항은 거세질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역시 저자세와 빈손 외교를 반복했다. 국빈 방문이라는 화려한 수사에 가려진 국익의 손실이 크다.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과 반도체 법안 등 시급한 현안은 미국과 협상한 흔적조차 없었다. 59억달러 투자 유치를 말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1천억달러와 비교해 압도적인 불균형도 문제지만, 얻어내는 투자가 아니라 찾아오는 투자였다. 모든 외교 자산을 투입해서 핵 공유 또는 핵 공유에 버금가는 확장 억제를 받아오겠다는 설계는 미국의 핵확산 금지 원칙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며, 동맹 지상주의인 보수 정부가 역설적으로 동맹을 신뢰하지 못한 자기모순의 결과다. 워싱턴선언은 외교 자산을 투입하고도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외교 실패다. 애초부터 설계 자체가 잘못된 회담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NPT를 준수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그간 정부 여당과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던 핵무장론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볼 수 있어 그나마 위안거리다.

 

방미 직전 윤 대통령이 로이터 인터뷰에서 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직접 지원'과 '대만 문제의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라는 선을 넘는 표현을 공동성명에 담지 않아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이 없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열어놓음으로써 불씨를 남겼다. 대만 문제 역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로 갈음했지만, 이어진 문장에서 인도·태평양에서의 무력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악과 흑백의 이분법이 난무하고, 항상 '결단'이라는 것이 이어진다. 자유로 대표되는 가치 외교는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하지만, 외교 무대에서 진영을 가르고 적대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작년 9월 유엔 연설에서 강조한 자유는 세계 평화를 위해 가치가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수라는 점에서 유엔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외교는 51대 49의 협상 무대이고, 흑백이 아니라 회색인 타협의 무대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노력이 없는 '힘에 의한 평화'는 한반도 리스크를 증대하고, 안보 딜레마를 초래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 1년의 진영 편중 외교가 낳은 또 다른 심각한 결과는 한국이 이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점점 자율적 플레이어로서의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미·일 외에는 외교가 없고, 그러다 보니 다른 국가들도 굳이 애써서 한국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국 외교가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국익과 국격을 해치기 전에, 근본적인 방향 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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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1년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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